[월드리포트] "난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마치 이 공포영화의 제목처럼 지금 미국이 과거 해 온 일 때문에 어떤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임시 망명중인 전 CIA 계약자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이는 메가톤급 폭로가 연일 전 세계를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슈퍼 파워 미국의 힘이 도청에서 나온 것이라는 놀라운 가설이 갈수록 사실로 굳어가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 여기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미 정부는 물론 미국 언론들도 이 거대한 폭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워싱턴을 향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이 폭풍이 어쩌면 미국의 미래를 바꿔 놓을 지도 모릅니다.
미 국가 안보국의 도청 파문은 이제 개인에 대한 불법 정보 수집 차원에서 국가 차원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 국가 안보국이 전세계 35개 나라 지도자들의 전화번호를 확보해 감청했다는 내부 문건이 나왔습니다. 구체적으로 거명된 브라질, 멕시코, 프랑스, 독일은 배신감과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은 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메르켈 총리는 “친구 사이에 전화를 엿듣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차갑게 맞받았습니다. 마침 벨기에 브뤼셀에 개막된 EU 정상회의장은 미국에 대한 성토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른 중요한 이슈들도 많았지만 이 문제에 묻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미국과의 FTA 협상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강경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협상 전략이 다 노출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 문제가 유엔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독일과 브라질이 이 문제를 막기 위한 결의안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미 국가안보국의 도청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국제적인 사생활 권리 보호를 주장하면 미국을 압박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딜마 로세후 브라질 대통령은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오바마의 전화 사과를 받아 들이지 않았고 로세후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을 취소할 만큼 강경 입장입니다. 재선 이후 첫 국빈 방문으로 브라질을 선택한 오바마의 입장이 난처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게 됐습니다. 유럽의 강국 독일과 남미의 떠오르는 경제 대국 브라질이 한 목소리를 낸다면 미국으로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유엔에서 나른 나라에 대한 제재를 주도해 오던 미국이 반대의 상황으로 몰리는 것 자체가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러시아가 ‘미국의 배신자’ 스노든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것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 것일 수 있습니다. 미 정보기관이 몰래 엿들은 정보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폭로된다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이런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이 구축한 동맹 관계의 근본적인 틀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도청으로 얻을 수 있는 달콤한 열매를 포기하려 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 동맹국들이 미국과의 암호 정보 공유를 거부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과연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까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