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는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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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8회 LG가 기회를 잡았다. 캡틴 이병규(9번)가 희망을 살렸다. 1사 후 이병규가 두산의 바뀐 투수 핸킨스로부터 좌익수 키를 넘어가는 2루타를 때려냈다. LG 벤치, 3루쪽 LG 팬들의 분위기는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안타 하나에 동점까지 갈 수 있는 상황. LG 벤치는 우선 동점이라도 만들기 위해 대주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허벅지가 좋지 않은 이병규 대신 양영동을 투입, 짧은 안타에도 홈에서 승부보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병규로선 아쉬운 일일 수 있었다. 11년간 기다려온 포스트시즌에서 마지막 타석이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극적인 동점으로 게임이 연장전으로 들어간다면 그가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주자로 있을 때 후속 안타로 홈까지 밟는다면 그 기쁨을 동료들과 함께 더 제대로 느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병규는 부리나케 더그아웃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매번 그가 서있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응원을 시작했다. 그의 마음 속엔 ‘제발 안타 하나만 나와라’ 단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엔 이병규(7번)가 들어섰다. 그가 열심히 핸킨스와 싸우는 동안, 갑자기 대기 타석에 있던 김용의가 사라졌다. 캡틴 이병규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핸킨스의 볼을 한 개라도 더 본 그가 마지막 타자가 될 수 있는 그에게 뭔가 하나라도 더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음 타자가 다름아닌 김용의였기에 더 살뜰히 챙겼다. LG의 첫 실점은 김용의의 실책에서 비롯됐다. 게임을 하는 동안 마음의 부담과 짐이 얼마나 컸을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이병규. 결정적인 상황에서 반드시 김용의가 해결사 역할을 해줘 그간 마음의 부담과 짐을 훌훌 털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득 담겨있는듯 했다.
그렇게 김용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그는 다시 더그아웃 맨 앞에 나와 박수를 치고 후배들을 응원했다.
첫 찬스는 아쉽게 무산. 이병규가 좌측 외야로 타구를 보냈지만 타구는 두산 좌익수 정수빈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김용의도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냥 보낸 뒤 2구째를 공략했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좌익수 뜬공이었다. 결국 LG는 이 찬스를 잡지 못한 채 8회말 대량 실점을 하며 그의 가을야구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이병규의 마지막 조언과 바람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이병규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찰나의 순간에도 후배를 위해, 팀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역할은 다 하려고 했다. 플레이오프 내내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렇게 끝까지 더그아웃을 든든히 지켜줬다. 기대가 컸던만큼 아쉬움도 컸던 모양. 경기가 끝난 후에도 그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그만큼 그에게 가을야구는 간절했고, 우승은 그가 야구를 하는 동안 꼭 이뤄보고 싶었던 소원이었다. 그는 “진짜 우승 한 번 꼭 해보고 싶다”는 말을 시즌 내내 참 많이 했었다.
우승이 간절했던 만큼 미안한 마음도 컸던 캡틴이다. 시즌 후반부에 들어갈 수록 이병규는 “화가 난다”고도 했다.
1위까지 노려볼 수 있었던, 치열한 순위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이 예전만큼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함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내 기록적인 부분은 신경 안 쓴다. 내가 잘 치면 팀이 이기는데 내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 뿐이다.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는데 후배들에게 창피한 적도 많았다”고 했었다.
“내가 더 잘했다면….” 이병규는 올해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팀에 미안한 부분, 아쉬운 면도 참 많았던 모양이었다. 그가 가을야구를 시작하면서 그라운드 안팎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고 했던 것도 그러한 복합적인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이병규는 그러한 마음만큼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간절했던만큼 그 누구보다 더그아웃에서든 타석에서든 누상에서든 최선을 다했다.
이병규가 맞는 11년만의 가을은 이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이병규가 서 있던 자리의 온기와 간절함 만은 아직도 남아 있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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